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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막의 나무조각을 배로 이용한 것을 배의 시초로 본다면 배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나일(Nile)강 유역(BC 4500년) 및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BC 4500년), 이라크의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BC 4500년), 중국의 황허의 하류평야 유역(BC 3500년) 등으로 모두 큰 강의 유역에 있고, 바다와 가까이하고 있어 일찍부터 물의 혜택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는 이집트의 고총(墓)에서 발굴된 도자기의 꽃병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BC 4000년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최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는 파피루스(Papyrus) 갈대를 엮어서 만든 파피루스 뗏베(갈대배)를 만들어 사용 하였으며, 배의 진화는 부목(浮木) 벌주(筏舟), 통나무배, 가죽배, 꿰어맞춘배, 쪽매배, 구조선(構造船)의 순으로 추정된다.


부목은 목재를 물 위에 띄운 것이고, 벌주는 나무나 풀을 엮어 부체로 만든 것으로서 파피루스배는 벌주에 속한다.
통나무배는 쟁기를 이용하여 통나무의 중앙부를 파낸 배이고, 가죽배는 구부러진 나뭇가지를 골격으로하여 가죽을 입힌 것이 가죽배이다. 꿰어맞춘배는 나무판을 서로 붙여서 만든 배이다. 이러한 배는 모두 소형이고 약하며 평수용(平水用)이다.
구조선(조립선)은 목재를 견고하게 짜맞추어서 우선 배의 골격을 만들고, 외판과 갑판을 붙인 것으로서 BC 15세기경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흥성한 곳이 페니키아(Phoenicia)이다. 페니키아는 지중해에 면해 있었으며 지금의 시리아이다. 페니키아가 해양으로 진출하게 된 동기는 항해에 편리한 좋은 항구가 많이 있으며, 산에는 가시나무와 삼나무 같은 큰 나무가 많아 조선에 사용하는 좋은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양민족 페니키아인은 목선으로 물자교역을 위한 연안항해를 통해 크게 번영하였으며, 노에 의한 추진이 주이고 돛은 간혹 사용되었다.
페니키아에 이어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맞이하였는데 그리스 초기에 트로이 원정(BC 1237년)에 나섰던 배에는 갑판이 깔려 있지 않았으나, BC 700년 경에는 3단 노선(3단에서 노(Oar)를 젓는 배)이 고린도에서 건조되었다고 한다. BC 500~600년경의 그리스 군선은 선수 아래(이물 머리)에 충각(Ram)이 있고 한 쪽에 17척의 노가 달려 있으며 선미에는 키잡이 노가 달려 있었다.
그 대표적인 선박이 갤리선(Galley)이라는 것으로서 선측(船側)에 많은 노를 달아서 배를 젓고 대형인 것에서는 2단 3단의 갤리선이 출현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맞이하면서 목선은 점차 크고 견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조선기술은 그리스 시대와는 다르게 발전하였다. 외부로 돌출하는 용골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판자를 겹쳐서 붙이는 크링가(Clinker)식에서 판자의 면을 맞대어 평탄하게 붙이는 카벨(Carvel)식의 판자 접합 방식이 채용되었고 판자는 청동 못으로 늑골(Frame)에 고착하였다. 또한 선수재는 굵은 나무를 써서 용골과 접하게하고, 용골의 앞쪽을 돌출시켜 충각을 만들었으며, 선미는 둥그스름하게 솟아 오르게 하였다. 로마의 군선도 3단 노갤리(Galley)선이 널리 쓰였다. 로마의 상선에서는 주로 돛대와 돛에 의한 항해를 하였다.


로마가 지중해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 지금의 스웨덴의 남부와 덴마크의 북부에 걸쳐서 노르만인이 살고 있었는데 스스로 바이킹(Viking)이라고 하였으며, 지중해선과 대조적으로 8세기 중엽부터 북해형(北海型)의 배를 만들어 북해에서 활약하였다. 이 형태로부터 발달한 것이 바이킹선으로, 선수미(船首尾)가 뾰족한 세장형(細長型)의 선형을 하고 있으며, 외판은 비늘달기를 특징으로 하고 경쾌하게 범주(帆走)하였다.

십자군의 원정군은 이탈리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는데, 이때 해상수송을 통해 다수의 군사를 옮기는 관계로 조선술,항해술이 발달하였고 많은 배가 동원되었다. 당시의 배는 선수(Stem,이물)와 선미(Stern,고물)에 높은 선루(船樓)가 세워져 있었고, 사각형 돛을 상활(Yard)에 매어 달았으며, 배를 조종하는 키잡이 노판은 우현측에 설치하였다. 이들 배중에는 9세기 때부터 사용하여 오던 라틴 돛(Lateen Sail)을 하나만 메어 달았는데 12세기 말경에는 배가 대형화 되면서 돛을
2대 매어 달았다. 14세기에 들어와서는 북구선과 지중해선의 조선기술이 교류되면서 장점들을 서로 취하게 되어 발전을 하게 되었다. 타 장치의 발달에 힘 입어서 범선은 대해양을 자유롭게 항해하게 되었다.

이태리 사람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pher Colombus)는 산타 마리아 호(Santa Maria), 핀타 호(Pinta), 니나 호(Nina) 3척을 타고 1492년에 스페인의 파라스 항구를 출범, 69일동안 항해하여 서인도제도의 바하마 군도 와드링그 섬(지금의 산 살바도르 섬) 에 도착함으로써 아메리카의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산타 마리아호는 3대의 돛대를 가진 횡범선으로써 긴 선수루를 설치하였는데 선수에서 3.7m 가량 앞으로 돌출하였으며, 전장은 29m, 만재배수량(滿載排水量) 은 233톤이었다. 이러한 범장은 지중해에 나타난 카락 형선(Carrack Ship)의 예이며, 그 후에 나타날 쉽 형선(Ship)의 시초형이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의 범선의 선형으로는 카락 형선(Carrack Ship)과 카라벨 형 선(Caravel Ship, Cavel Ship)이 있는데 카락 형선은 지중해에서 처음으로 건조된 범선으로 돛대가 3대짜리가 많으나 4대짜리도 있었고, 카라벨 형 선은 포르투갈에서 처음 건조하였는데 2~3대의 돛대를 가지고 있으며 현판(외판)을 맞대어 붙이는 조적 방식을 카라벨 식이라고 하였다. 15세기에는 지중해의 배들은 3대의 돛대를 세운 결장과 범장이 현저하게 발달하게 되고 그 위에 타의 조정장치가 개량되어, 범선은 대양의 항해에도 견딜 만큼 발전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차차 쇠퇴하고, 17~18세기에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이 새로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하여 바다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와 동남아에 눈을 돌려 17세기 전반까지 유럽의 무역을 한 손에 쥐고 세계 무역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7세기부터 18세기에는 무역규모가 급증함에 따라 바다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각국에서 군함과 대형범선의 건조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인도무역에 종사하던 상선의 대부분이 400톤 정도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규모였으나 18세기에는 1,200톤의 무역선이 등장함으로써 범선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상선의 선형은 18세기에는 범선의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고, 외관상으로는 군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상선과 군선의 설계상의 차이는 군선에는 선미 갑판에서 선수루의 선현 측면을 따라 현문(Bulwark)을 설치하였고, 상선에는 화물의 적재 적하 및 보호를 위해서 전통 갑판이 일찍부터 나타났다.


철구조선(鐵構造船)과 기선(汽船)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목선에 이어 19세기 초에 출현하였다. 목철선, 철선은 약 20년간 사용 되었고, 기록에 남은 최초의 철선인 평수선은 1818년 영국에서 건조된 발칸호(Vulcan)이다. 항양선(航洋船)으로는 영국의 J.S. 러셀에 의해 설계되고 1858년 진수한 그레이트이스턴호(Great Eastern, 총톤수 18,915톤, 만재배수량(滿載排水量) 27,400톤, 전장 692ft, 전폭 118ft, 폭 82.7ft, 여객정원 4,000명, 선원 400명, 최대속력15노트, 돛면적 65,000ft²)가 유명하며 용골에서 수선 부근까지 철판을 이중으로 사용하였다. 조선기술상으로는 철선이 출현하고, 그 후 Bessemer 강철제조기술 과정을 거쳐 제강법이 발명되면서 철(Iron)보다 더욱 우수하고 강한 강철(Steel)이 보급되어 현대의 강선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선체, 기관, 항해기기 등은 물론 다양한 선종 및 선형으로 세분화되면서 경이적인 발전과 함께 항해술과 선박 운용의 기술도 크게 발전하였다.


기범선(돛을 갖춘 소형 발동기선) 서배너호가 증기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하였고, 스크루(Screw Propeller)를 처음 장착한 선박은 사라산드호이다. 기선의 초기 기관은 모두 증기왕복동기관(蒸氣往復動機關)이었고, 1884년에는 증기터빈기관이, 1894년에 디젤기관이 발명되었으며, 군함에 증기기관이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1852년에 프랑스 해군이 Napoleon호(길이 235ft, 배수량 5,057톤, 900마력, 스크루 프로펠러, 13.8노트, 포 92문)를 건조하고 나서부터이다. 본격적인 터빈.디젤선 시대는 193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조선기술의 발전으로는 추진기관의 일대 변혁 으로서 터빈선, 디젤선, 중유연소선 및 전기추진선의 출현과 선대기간을 단축하고, 선체중량을 가볍게 하여 적하중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블록건조공법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류의 소비가 급증하면서 대형화되었고 유조선(油槽船)은 1885년에 나타났다. 전함, 순양함을 주체로 하는 대함거포 시대는 사라지고, 항공모함, 잠수함, 대잠함정이 주역이 되었으며, 대형선의 수요급증과 더불어 조선업과 해운업이 전성기를 맞아 신조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서 선박건조 기술력은 더욱더 발전하게 되었다.


선박의 형상은 통나무에서 노를 젓는 방식, 돛을 단 범선을 거쳐서 증기기관으로 추진하는 증기선, 내연기관으로 추진하는 디젤선, 원자력으로 추진하는 원자력선 등으로 발전되었고, 선박의 재료도 목선에서 강선으로, 또한 특수재질의 신소재 선박도 개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21세기에는 인터넷과 초고속 통신 등의 발전 등으로 선박의 초고속화가 요구되어 저항 최소화 및 초고속화로 초전도 전자 추진선 및 WIG선 등이 실현될 수 있으며, 액화천연가스 및 액화석유가스(LNG 및 LPG)운반선, 초호화 여객선 등 전문성 및 고부가가치가 요구되는 선박으로 발전하게 되어 선박의 역사는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이다.